모순

양귀자

마음이 이미지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우리들 마음을 이끌어버렸을 때 그 자괴감을 어찌 견딜지 나는 알 수 없었다.

192

이모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그것은 첫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자꾸 어긋나는 것 정도여야 어울린다고. 남루한 일상의 고통에서 홀로 자유로운 이모를 보는 것이 내 삶의 큰 위안이었다.

224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229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229

얻고 싶은 것은 모두 눈물로 얻어 내며 짧은 세상 살아온 이력이 저절로 보였다.

246

남김없이 다 솔직해 버리면 사랑이 누추해지니까. 사랑은 솔직함을 원하지 않으니까.

250

푸념만 늘어졌고 악 물어야 할 입술은 방심한 듯 조금 벌어져 있다.

262

나는 이런 말을 알고 있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나 삶 속에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고.

268

은밀한 어둠은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기 쉽다.

269

위로인지 경고인지 분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273

이모 같은 사람이 뿌리내리며 살기로는 이 세상이 너무 얇았던 것이다.

288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295

내게 있어 ‘진실’은 좀 식혀서 마셔야 하는 뜨거운 국물과 같다.

300

누구라도 거저 얻은 것에는 애착이 덜한 법이다.

301

하나의 개념의 필연적으로 잇따르는 반대어, 거기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302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 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 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 있다.

303

하고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번 뿐인 삶을 반성하고 사색하게 하는 장르가 바로 소설이라고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일하게 믿어 왔다.

304

일상의 남루를 벗겨 주고 상실감을 달래 주는 작가의 자리에 대해 요즘 나는 다시 생각하고 있다.

305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져 있으며 그 모습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306